"무엇인가가 눈 달린 자를 멈춰 세우고 거기 없던 입구를 열어 보인다." 관심을 끌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미지들과 긴급한 목소리들로 가득 찬 세계에서 미술은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미술 비평가 윤원화는 코로나 19 팬데믹 기간에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으로 본 미술 전시들을 되짚으면서 오늘날 미술이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며 실제로 그것을 어떻게 볼 수 있을지 이야기한다. 파편적인 산문들로 이루어진 이 책을 하나로 엮는 것은 껍질의 형상이다. 껍질은
...그 자체로 알맹이가 아니지만 그와 같은 것이 깃들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며, 보는 자의 눈길을 끌고 입을 열게 하지만 어떤 말로도 붙잡히지 않는다. 『껍질 이야기』는 이탈로 칼비노의 조개껍질과 앙리 르페브르의 거미줄에서 출발하여, 유 아라키의 노래하는 굴껍질, 파트타임스위트의 웅성거리는 입자들과 김주원의 조각난 사진들, 텅 빈 미술관 공간을 360도로 벗겨낸VR 전시, 고해상도로 촬영된 이사무 노구치의 조각 정원, 문경의의 허기진 그림들과 현남의 쭈글쭈글한 껍질 더미, 몸의 잔상들로 포화된 신체훼손 요리 쇼, 브뤼노 라투르의 부드러운 땅껍질, 서울 한복판에 숨겨진 돌산, 언메이크랩이 생태공원에서 발견한 깨진 자갈과 김아영의 방랑하는 돌, 바다를 가로질러 해변에 다다른 코니 정의 사변적 씨앗에 이른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껍질의 이야기는 살아 있는 몸이 더 많은 삶을 향한 열망과 환멸 속에서 자신이 놓인 장소를 고쳐 그리는 성장과 이주, 피난의 과정으로 나타난다. 서로 불일치하는 몸과 이미지의 삐걱거리는 상호작용을 따라가면서, 이 책은 현재의 제한된 지평을 흐트러뜨리는 미술의 불완전한 힘을 긍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