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의 고전이자 하나의 이정표〈프로이트 이후 출간된 가장 중요한 정신의학서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으며 등장한 『트라우마』는 인간이 폭력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그리고 인간은 얼마나 사악할 수 있는지를 고통스럽게 보여 준다. 고통의 심연을 드러내는 생존자들의 증언과 인간 심리에 대한 주디스 루이스 허먼의 깊은 통찰력은 인간 조건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열어 보인다. 하버드 의과 대학 정신의학과 교수이자 케임브리지 병원 〈폭력 피해자 프로
...그램〉의 교육 이사를 맡고 있는 허먼은 사람들이 트라우마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전문 용어로 불리는 한 정신과적 증상에 관한 이야기를 인간 해방의 역사라는 도덕적, 정치적 차원의 이야기로 전환시킨 것이다. 허먼은 가정폭력이든 정치적 테러이든 폭력의 메커니즘은 어디에서나 동일하며, 이러한 폭력을 종결짓기 위해서는 인권 운동 같은 정치적이고 공적인 행위의 개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왜? 남성이 여성보다, 어른이 아이보다, 국가가 군인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다. 성폭력과 가정 폭력을 겪은 피해자들과 20여 년간 함께해 온 연구와 임상 작업의 결과인 『트라우마』는 피해자의 역사를 재건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생존자가 재건한 그들의 역사를 되짚어 간다. 인간 내면에 숨겨진 악에 대면해야 했던 사람들은 살아남았고, 그 무지막지한 파괴와 단절 속에서도 인간 내면의 선함, 즉 인간과 인간이 다시 연결될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삶의 힘을 되찾았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증언하며, 그 과정에서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한다. 이 책은 우리 삶을 구해 준다!『트라우마』는 성폭력과 가정 폭력 피해자뿐 아니라 다른 여러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 특히 참전 군인과 정치 폭력 피해자들과 함께한 경험도 담고 있다. 이 책은 공적이고 사적인 세계 사이, 개인과 공동체 사이, 그리고 남성과 여성 사이의 연결을 회복하는 것에 관한 책이다. 또한 이 책은 공통성에 관한 책이다. 강간 생존자와 참전 군인 사이, 가정 폭력 피해 여성과 양심수 사이, 그리고 국가를 지배하는 폭군이 만들어 낸 거대한 강제 수용소의 생존자와 가정을 지배하는 폭군이 만들어 낸 숨겨진 강제 수용소의 생존자 사이의 공통성을 다룬다. 허먼은 생존자들의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지속 기제를 밝힌다. 특히 관계의 단절과 힘의 상실을 외상 경험의 핵심으로 파악하는 허먼의 통찰력은 인간이 가한 폭력을 경험한 사람이 보이는 고통을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게 하며, 또한 정확한 치료로 연결될 수 있게 하는 튼튼한 이론적 관점을 제공한다. 다양한 치료 사례를 통하여 치료적 관계와 치료 과정, 그리고 집단 치료에 대해서도 말한다. 허먼의 치료 단계가 탄탄한 것은 그 안에 인간 내면에 남아 있는 힘을 긍정하고 인간의 연결이 결국 치유의 관건이라는 인간관과 세계관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허먼은 난파당한 것과 마찬가지인 피해자에게 제1순위의 지원에 해당되는 것이 바로 안전감의 회복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은 물질적인 측면과 심리적인 측면 모두에 해당되며, 결국 환자 스스로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회복시켜 주는 데 그 목표가 있다. 『트라우마』가 발표되고 수십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도 이 책은 변함없이 활동가에게는 생존자의 심리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를 제공하고, 전문가에게는 관점의 변화와 함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처음의 다짐을 재확인시킨다. 그리고 생존자에게는 회복의 힘이 무엇인지 알려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