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빙수의 전설』, 『친구의 전설』로 전설 신드롬을 일으킨 이지은 작가가 이번에는 ‘수박’의 전설로 돌아왔다. 장에 갔다 늦은 시간에 산길을 걸어오던 팥 할머니 앞에 나타난 태양 왕 수바. 돼지인지, 공인지 데굴데굴 구르기 좋은 모양새로 나타난 수바는 원래 태양을 비추어 생명을 자라게 하는 하늘의 용이었다. 수바의 날개와 태양 빛을 탐내던 둘 머리 용에 의해 날개를 떼어 먹힌 채, 간신히 땅으로 도망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수바는 할머니에게 간절
...하게 도움을 청하지만, 왕 대접을 받긴커녕 이름조차 수박, 왕수박 등으로 불리며 더 혼란을 겪는데….팥 할머니의 인정 많고 털털한 정감은 『팥빙수의 전설』에 이어 『태양 왕 수바: 수박의 전설』에서도 빛을 발한다. 수바의 이름을 곧 죽어도 ‘수박’이라 부르며 실랑이 하는 모습, 낯선 존재인 수바의 부탁을 선뜻 들어주는 따스함과 대범함, 수바의 행위 없는 간구를 비웃듯 기운차게 둘 머리 용을 불러들여 호리병에 가둬 버리는 배포, 그렇게 귀하다는 용의 선물을 받았지만 온 나라 안에 넘쳐나게 된 어이 없는 상황에서도 “하는 수 없지.” 하고 넘겨 버리는 쿨내 진동하는 모습에서 일상의 유머를 넘어서는 통쾌함을 맛볼 수 있다.태양 왕, 생물의 성장을 주관하는 용인 수바는 정작 위기에 처한 순간 하늘과 땅을 향해 상을 차리고 내재적 기원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면, 팥 할머니의 해결책은 직접적이고 담백하다. 실체 없는 기원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 직접 부딪치고 드러내고 정면으로 맞설 때 오히려 실마리를 풀어 갈 수 있다는 작가의 시선이, 한껏 가볍고 유쾌해 보이는 수박의 전설 기저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