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박한 아름다움을 좇아 마침내 시에 도착하는 이들의 이야기 한국 시 번역가들이 전하는 사랑과 감탄의 언어‘한 편의 시는 “네가 세상에 무엇을 더하였는가?”라는 엄혹한 질문에 버텨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에게 글을 쓰는 일은 저 엄정한 물음에 성실하게 대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나의 노동은 세상에 무엇을 더하고 있나. 나는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고 있나. 한국문학 불모지를 개척하는 젊은 번역가들이 사는 법과 직업의 긍지를 조심스레 내놓는다.
... 문학의 시대는 끝났고 첨단기술이 소설을 쓰고 번역가를 대체하리란 전망이 우세한 시절에 시가, 문학이, 번역이 사람을 살리는 현장 이야기를 얹고 싶었다.-서문 중에서르포 작가 은유의 신작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가 읻다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시’와 ‘사람’을 글쓰기의 두 축으로 삼는 저자가 그 교집합에 있는 존재, 한영, 한일, 한독 시 번역가 7인의 이야기를 담아낸 인터뷰 산문이다. 저자는 읽는 사람으로서 시를 통해 삶의 굴곡을 응시했던 첫 산문 《올드걸의 시집》 이후, 이번에는 묻고 듣는 사람으로서 시 곁에 기꺼이 머무는 이들의 얼굴을 조명한다. 한국, 시, 번역가 한국 현대시 번역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시가 좋아서 무작정 시를 읽고 자발적으로 다른 언어로 번역해 퍼나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어디에요? 왜요? 처음에는 말 자체를 못 알아들었다. 외국 시를 한국 사람이 보는 건 익숙해도, 한국 시를 외국 사람이 본다는 건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낯선 존재의 출현은 늘 단번에 파악하기 어렵다.-서문 중에서‘AI가 대체할 직업 1순위, 번역가’라는 통계에는 어떤 맥락이 생략되어 있을까. 작가가 작품을 쓴 원어를 ‘출발어’, 이를 다른 나라 언어로 옮긴 번역어를 ‘도착어’라고 부른다. 7인의 한국 시 번역가들은 한국어로 쓰인 작품들을 각각 영어, 일본어, 독일어로 옮긴다(때로는 그 반대의 일도 한다). 이들이 출발어와 도착어 사이에 존재하는 문화적 간극을 면밀히 살피고 단어를 골라 배치하여 문체와 문맥을 살린 문장들이 독자에게 도착한다. 작품을 깊이 읽고 고민을 거듭해야 하는 일이기에 애정이 없다면 지속하기 힘들고, 잘할수록 투명해지는 노동이다. 효율의 논리에 포섭되지 않고 아름다움을 좇는 사람들, 이미 존재했지만 낯을 몰랐던 애정과 노동의 면면을 톺아보기 위해 은유 작가는 질문한다. 시도 번역이 가능한가요? 그 일을 왜 하시나요? 그리고 모든 질문은 결국 당신은 시를 어떻게, 왜 읽냐는 질문에 다름이 없기에 인터뷰이들의 답은 늘 삶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로 뻗어나간다.망망한 언어의 지평에서 자유롭고 외롭게 교차하기 내가 잘할 수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뭔가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느낌. 번역하고 싶은 글을 만났을 때, 뭔가 피가 돌고 약간 상기되는 기분, 그런 기분이 생기면 하게 돼요.-호영, 29쪽다른 길을 걸어가야 된다는 걸 깨닫고, 다른 길을 걸어도 살 수 있다는 걸 믿었어요. 저는 처음으로 저를 믿었어요. 다른 사람이 아니고 저를 믿었어요.-알차나, 169쪽 7인의 번역가들은 모두 ‘문이 있으니 열었다’라고 말하듯 담담히 운명으로서 번역을 말한다. 그것은 때로 무구하고 호기로운 마음을 따라-“바보가 되는 것과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좋아한다”(소제), “(문학이) 그렇게 재밌는 것이라면 나도 한번 해보자”(승미)- 때론 진동하는 삶을 수용하기 위해- “언어는 도망갈 수 있는 출구 같은 거예요”(박술), “처음에는 고민했는데 이젠 그냥 내가 두 아이덴티티 사이에서 계속 불안과 사랑을 동시에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새벽)- 한 시절을 치열하게 언어에 천착한 사람들이 견지할 수 있는 태도일 것이다. 인터뷰에 참여한 번역가들은 거의 이민자나 유학파로서 언어와 학력 등 문화자본을 가진 주류에 속하지만, 백인 중심적인 문화에서 혹은 가부장제 사회의 논리 안에서 근원적인 억압과 차별을 경험했다. 이때 문학 번역은 “퀴어와 논바이너리 정치를 논의하고”(호영) 동양인 멸시에 맞서 “우리도 감정과 생각이 있는 사람”(안톤 허)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운동으로서의 예술’로 기능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시를 연장처럼 쥐는 한편, 최고의 언어 학습법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라는 속설이 있듯 이들은 모두 어떤 사람, 작품, 혹은 언어 자체의 팬이다. “하염없는 몰입”의 반짝이는 순간을 묘사하는 이들의 “감탄하는 능력”은 대화 안에서 공명하며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의 한 시절 피난처가 되어주었던 시”(은유)의 기억을 소환시키기도 한다. 번역 ‘노동자’책에는 번역 현장에 있는 노동자의 기쁨과 슬픔도 가감 없이 담겨 있다. 일상에서 듣게 되는 “‘번역은 쉽잖아’ ‘번역은 창작이 아니잖아’라는” 함의가 담긴 무게 없는 말들에서부터 “비백인 번역가의 자리를 지우는 영미권 출판계”(안톤 허)와 “시를 읽는 문화가 부재하는”(박술) 현실. 자리 뺏기 싸움처럼 문학 번역 안에서도 상업성의 논리에 따라 지원의 파이가 나눠지는 시스템까지. 아름다운 작품을 발견하는 밝은 눈과 그것을 누군가와 나누기 위해 시간과 힘을 쏟는 이들 번역가의 아낌없는 태도는 핍진한 현실과 대조되며 무체계와 비합리의 구조를 역설하기도 한다. 하지만 외려 그들은 “시 독해와 번역은 정답이 없다. 이러한 혼돈과 불확실성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자가 번역의 세계에서 살아남는다”는 은유 작가의 묘사처럼, 시대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가로지르며 “무언가를 이겨내려면 그 힘은 공동체에서 온다”(소제)는 소신에 따라 한국문학 불모지에 균열을 꾀하는 선구자의 역할을 자처하기도 한다.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불순물이 없는 게 순수가 아니라 불순물까지 보는 게 순수다.-서문 중에서비로소 우리에게 도착한 문장들이 한 번역가가 생을 통과하며 체화한 감각으로써 읽는 이를 상상하며 건네는 대화임을 상상하게 되었다면, 번역가의 일이 기계로 대체된다는 전망은 이제 독자에게 드리운다. 당신은 시를 어떻게, 왜 읽는지. 미래에는 어떤 대화가 우리에게 남을지. 은유 작가의 문장으로 오해의 자리를 비워두며 자신의 해석을 믿고 나아가는 호영의 단단한 시선을, ‘번역 판’을 만들고 키우는 안톤과 소제가 관료화된 시스템에 던지는 질문들을, 한국어를 사랑해서 시 번역가가 되었다는 알차나의 넉넉한 사랑을, 일상과 번역일을 함께 운용하며 겪은 실패의 경험을 풀어놓는 승미의 소탈함을, 경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완결되지 않을 질문을 품고 시를 번역하는 새벽과 술의 혼란을 모두 읽은 후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번역가의 상은 사뭇 달라져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기어코 시에 도착하는 사람들, 그들의 꼿꼿한 문학에의 사랑은 우리가 잊고 지낸 시적 사유에 대한 나름의 답변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