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주기적으로 SNS 실시간 트렌드를 점령한 그 키워드!단행본 지면으로 무대를 옮긴 ‘악인의 서사’ 논쟁140자의 집단적 독백을 넘어 14,000자의 심층 탐구로콘텐츠 향유가 일상화되면서 창작 윤리에 대한 질문도 끝없이 제기되는 오늘날, 언젠가부터 많은 관객과 독자, 창작자들 사이에서는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라는 말이 빈번하게 화두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 간명한 슬로건은 당초 현실의 잔혹 범죄를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을 규탄하
...기 위해 대두됐지만, 머잖아 창작 서사 전체를 아우르는 원칙으로까지 받아들여졌다. 매혹과 연민의 시선으로 악인과 악행을 묘사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향해 이들 작품이 악을 비호하고 합리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악인의 서사 자체를 비윤리와 동일시하는 사고방식이 널리 확산된 것이다.하지만 이런 요구가 새로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우리가 간과한 물음은 없을까? 지금껏 악인의 서사에 관한 논쟁은 소셜미디어(트위터)를 중심으로 벌어졌지만, 분량 제한(140자)과 휘발성이 강한 매체의 특성 때문인지 상호간의 공통된 이해를 바탕으로 풍부한 논의를 낳는 데까지는 충분히 나아가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악인의 서사』는 악인의 서사에 관한 논쟁의 무대를 단행본 지면으로 옮겼다. 소설가 겸 영화 평론가 듀나, 문학 평론가 겸 편집자 박혜진, 문학 평론가 전승민, 미스테리 전문지 《미스테리아》 편집장 김용언, 영화 평론가 강덕구, 영문학 연구자 전자영, 번역가 최리외, 웹소설 작가 겸 연구자 이융희, 비평가 윤아랑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통찰 넘치는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는 저자 아홉 명이 참여해, 창작 서사에서 악을 재현하는 문제를 두고 저마다 시의적이고도 다채로운 논점을 제기한다.특히 숱한 오해와 모호한 주장으로 점철된 기존 논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악인의 서사』에는 모든 저자가 (140자의 100배에 해당하는) 14,000자 분량의 글을 쓰고 실었다. 일찍이 수많은 문학 작품을 비롯한 창작 서사는 인간의 복합성과 양가성, 도덕적 회색지대와 윤리적 딜레마 등을 추체험하는 장소로 기능해왔다. 창작 서사의 이런 입체성을 고려한다면, 단순히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라는 명령만으로 특정 작품의 재현 윤리를 온전히 가늠하기란 무리에 가깝다. 여기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악의 서사와 재현의 문제를 엄밀히 논하려면 적어도 이 한 줄짜리 문장에 멈추기보다 이로부터 상세하고 정연한 고찰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