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글쓰기의 전범, 김혜리 기자의 5년 만의 신작“언제나 영화가 있었다.어제까지 그만 써야 할 100가지 이유를 만지작거렸던 자신을 까맣게 잊고 흥분해서 키보드 앞에 앉게 부추겼던 영화들이.”“어떤 리뷰는 영화만큼이나 감동적이어서 그 자체로 작품이다.” “조용한 잉크 방울이 떨어져 스미듯 부드럽게 펼쳐지는 글”. “프레임의 세계를 다시 보여주는 영화기자.”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영화의 미덕을 사려 깊은 태도로 전해온 〈씨네21〉 김혜리
... 기자. 온라인에서는 단정한 사유와 섬세한 문장으로 가득한 그의 글을 상찬하는 리뷰를 종종 만날 수 있다. 일반 독자뿐 아니라 문학평론가 신형철, 소설가 윤성희, 영화평론가 허문영 등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저자들 사이에서도 김혜리의 글은 단연 영화 글쓰기의 전범으로 회자된다. 이토록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그가 5년 만에 출간한 산문집 『묘사하는 마음』은 2016년 이후 팟캐스트를 통해 그의 목소리로만 영화 이야기를 접했던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씨네21〉의 개봉작 칼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에 2017~2020년 연재했던 글과 그 전에 쓴 ‘틸다 스윈튼’ 배우론 외 몇 편의 에세이를 더해 엮은 이 책은, 여전히 영화라는 대상을 주어로 놓고 그 그림자를 좇는 겸손한 태도로 빛난다. 볼거리에 대한 단정적 평가가 범람하는 시대에 취향을 전시하기보다 영화라는 창작물이 스스로에게, 또 자신의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무엇일까를 찬찬히 묻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세는 그에게 영화의 ‘묘사’를 추동하는 힘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영화의 ‘이목구비’를 살펴 사람들에게 그 초상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예기치 못하게 ‘전망 좋은 언덕’처럼 해석에 이르게 된다고 고백한다. 내가 영화를 따라다니며 한 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돌아본다. 그나마 거리낌 없이 쓸 수 있는 단어는 ‘묘사’다. 우리는 매력적인 사람을 보면 사진 찍기 원하고 귀에 감기는 노래를 들으면 따라 부르려 한다. 영화에 이목구비가 있다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그 초상을 그려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 내게 해석은 묘사의 길을 걷다 보면 종종 예기치 못하게 마주치는 전망 좋은 언덕과 같았다. _11쪽, 책머리에 『묘사하는 마음』은 1부의 배우론 「부치지 못한 헌사」로 시작해 영화의 주제로 가름한 부(2부 「각성하는 영화」 3부 「욕망하는 영화」 4부 「근심하는 영화」), 나아가 형식에 천착한 부(5부 「액션과 운동」 6부 「시간의 조형」)를 거쳐 2010년대 이후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지형을 다룬 「팽창하는 유니버스」로 막을 내린다. 영화의 나라를 경유하는 총 53편의 글들은 저자의 의도에 따라 긴밀하게 배치되어 한 편의 영화에 대한 사유가 다음 영화를 사유하게 하며 촘촘한 고리를 이룬다. 밀도 높은 글 사이사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비유와 은근한 유머는 독자를 책의 마침표로 이끄는 쉼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