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부터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격동의 혁명기를 북조선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살핀 역사서다. 브루스 커밍스의 제자이기도 한 역사학자 김수지는 이 시기를 국가 형성의 관점에서만 조명해 왔던 기존의 역사 서술에서 탈피해 평범한 농민, 노동자, 여성들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사회주의적 근대성을 경험했는지 살핀다. 문맹퇴치 운동의 결실로 이제 막 한글을 깨우친 사람들이 서툰 글씨로 생생히 기록한 지방인민위원회 회의록, 당과 사회단체에 가입하기
... 위해 제출한 이력서와 자서전, 출소 장기수 정치범들에 대한 저자의 직접 인터뷰, 그리고 여성 사회주의 정치인이나 여성 빨치산 전사들이 남긴 구술 기록에 대한 촘촘한 분석를 통해 북조선에서 전개된 사회혁명은 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쳤고, 이들이 사회주의혁명이라는 거대한 내러티브 속에서 자신의 인생사를 어떻게 재구성하며 혁명에 동참하려 했는지, 또 당시 품었던 꿈은 무엇이었는지 조명한다. 나아가 오늘날 해방 전후와 혁명을 기억하는 남성들의 내러티브와 여성들의 내러티브에서 나타나는 차이에 주목하며, 남성들의 개인사는 어떻게 민족사의 내러티브와 굳건하게 결합할 수 있었는지, 반면 여성들의 개인사는 왜 민족사의 내러티브와 결합하지 못한 채 주변부 여성사로 밀려나 있게 되었는지 살핀다.해방 공간에 대한 섬세한 관점과 분석을 기반으로 북조선 평범한 사람들의 사회혁명에 대한 기억과 열망을 보여 주는 이 책은, 북조선을 악마화하거나 타자화하지 않고, 북조선 체제를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나아가 북조선 혁명 당시 평범한 사람들이 품었던 이상과 오늘날 북조선의 현상태를 비교하며, 새로운 관점에서 북조선 역사를 비판적으로 고찰할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