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2015년 기준 세계 400대 부호 중 자수성가형은 65%로 미국 71%, 중국 97%, 일본 100%, 한국 0%로 나타났다(Bloomberg, 2015). 자산 10억 달러(약 1조 2,000억원) 이상 부자 가운데 상속형은 한국이 74.1%로 세계 평균 30.4%의 2배 수준에 달한다(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2016). 이는 우리나라 경제의 비역동성을 말해주고 있다.
... 여전히 소득 3만 달러의 문턱에서 11년째 머무르고 있는 우리로서는 달갑지 않은 현상이다. 더구나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우리 경제의 노화 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개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개발 원조를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 국가 중 하나이다. 저렴한 노동력과 노동집약적 산업에 기반하여 1960년대 경제개발을 시작한 이후 1970~1980년대 자본 확충에 기초한 중화학 공업화로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 이후 1990년대부터는 지식·정보 기반 산업으로 이전하여 IT 산업을 비롯하여 높은 성장을 시현하였다. 하지만 투입자원 효율성에 의존하는 대량생산형 산업 구조의 관성과 대기업 중심의 Top-Down식 의사결정 패턴은 이제 그 한계에 직면하고 있으며, 소위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지식 정보화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이 요구되고 있다.
지식과 정보는 내생성과 창의성을 생명으로 하여 다양한 주체들의 활발한 소통을 통해 창발하는 생태계적 특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접근을 요한다. 폴 로머Paul Romer가 주장한 지식의 내생적 성장이론도 지식이 외생적 변수로서 경제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나 자본과 같은 생산 요소로서 노동과 자본과 영향을 주고받는 내생변수로 취급함(Romer 1986, 1990)에 그 의의가 있다. 지식 체계인 이론과 현장 세계인 실제 간의 밀접한 관계가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하나의 축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식 정보화 시대가 진전될수록 이론과 실제 간 맥락적 연결을 가능케 하는 암묵적 지식, 체화된 노하우, 숙련 등이 점점 중요해진다.
다시 말해 지식의 창출·확산·응용이라는 일련의 과정에 혁신 주체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이들이 다시 확산·응용되는 내생적 과정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R&D 투자액이 세계 1, 2위일 정도로 그동안 지식·기술 창출에 상당한 역점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가 그에 못 미치는 것은 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혁신은 투입이 많으면 산출이 많다는 투입-산출 효율성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친 일상의 축적이 변용으로, 변용이 혁신으로 이어지는 생태계적 환경이 전제되어야 지속적인 혁신이 가능하다.
결국 혁신은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Bottom-Up 과정으로 자연스레 드러나는 속성을 지닌다. 하지만 우리는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혁신 방식을 채택하여 왔다.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 다음으로 IT 산업, 4차 산업 등으로 목표는 지속적으로 변했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는 방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중앙 및 지방정부가 목표를 정하고 예산을 마련하여 민간이나 공공을 지원하고 일정 기간 이후 성공 여부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기본적으로 타율적이라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혁신이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이다. 내적 필요성에 의해서 추진되고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져야 혁신의 내용에 직접 들어갈 수가 있다. 그렇지 않고 그 동인이 외부에 있으면 서론에만 머물고 본론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진정 혁신을 이룰 수가 없다.
창업은 그런 면에서 스스로 해봄으로써 앎의 체계를 만들어 가는 내생적 과정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질서에 편입되지 않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기존의 가치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여 경제의 진화 경로를 새롭게 그려낸다. 그만큼 창업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뿐만 아니라 혁신을 통한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창업 활성화를 위해 상당한 자원을 투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창업활동은 아직 저조한 편이다. 우리나라의 초기 창업비율은 2012년 기준 6.6%로 OECD 평균 8.8%에 비해 낮은 편이다(Global Entrepreneurship Monitor). 대표적인 창업 선도 대학인 KAIST의 경우 2011년 기준 창업률이 0.8%로 미국의 Stanford 대학의 20.8%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KAIST 창업보육센터 2013).
창업을 강조하는 이유는 취업은 기본적으로 이미 만들어진 안정적인 조직의 힘을 활용하므로 외생적 발전의 성격이 강한 반면 창업은 자신이 스스로 성장해야 하므로 내생적 성장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창업이 저조하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의 역동성이 낮다는 것이요, 청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접어들어 미래가 불투명한 국면에 있다는 것이다. 경제의 내생성을 발휘할 수 있는 샘이 고갈되었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이제 더 이상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로는 급변하는 혁신 경쟁에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창업 활성화와 중소기업의 강한 기술력으로 혁신을 주도할 수 있도록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사회 전반에 걸쳐 창업을 적극 유도해야 하며, 창업에 대한 위험은 정부와 대기업들이 일정 부분 부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산이나 경제의 잉여 부문 리소스가 창업의 위험을 감소시키면서 분배되도록 조정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건전한 혁신생태계 조성에 기여하는 방향에서 창업이 활성화되도록 접근하는 것이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하며, 여기엔 벤처 투자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창업투자회사, 엔젤 등의 투자는 인체의 혈관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건전한 투자자들이 풍부해질 때 창업자의 위험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투자자들을 매개로 기술 및 지식의 스필오버 효과(유출되어 확산되는 효과)가 활발해지면서 혁신 생태계 조성에 윤활유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이 책은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과 혁신Innovation을 학습하는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동문들이 모여 엮어낸 스타트업 성공에 관한 지침서이다. 현재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동문들의 직업만큼이나 다양한 산업 현장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분석하고 예상되는 미래 전망을 담았다. 대한민국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이 아닌 필수적 요소로 자리 잡은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업계 관계자가 아니라도 다양한 비즈니스에 접목할 수 있도록 배경 지식뿐 아니라 통찰의 근거를 제공한다. 모쪼록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생들의 소중한 경험과 지혜가 성공적인 창업에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2018년 1월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 이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