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쾌대, 임군홍, 변월룡, 박경란, 신순남, 전화황, 김용준, 이응노, 도미야마 다에코. 책은 이 아홉 명의 ‘낯선’ 화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북으로 갔거나 “한반도에서 살지 않았으나 우리 역사의 한편에 있는 이들”이다. 저자 안민영은 이들에게 ‘경계의 화가’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들은 고향에 따라, 활동 지역에 따라, 성별에 따라 다른 경계선을 마주하지만, 경계에 선 자만이 느끼는 불안함과 두려움, 아득한 감정은 공통
...으로 전해진다.저자는 ‘경계의 화가’가 남긴 그림을 차분히 읽어주는데, 그에게 그림을 읽는 일은 그림의 선과 색, 구성, 작가만의 독특한 화풍을 알아채는 것을 넘어선다. 화가의 마음을 읽고, 생애를 읽고, 그가 살아간 역사를 읽는 일이다. 안민영은 하나의 그림을 온전히 읽어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경계의 화가가 남긴 흔적을 찾기 위해 국내외 아카이브를 뒤지고 경매 사이트를 살피며, 화가의 남겨진 가족을 만난다.이러한 노력으로 이쾌대의 1957년 작 〈3·1봉기〉 속 ‘태극기’가 1959년 작품에서는 ‘自主’(자주) 깃발로 바뀌고, 미처 완성하지 못한 채 북으로 간 임군홍의 〈가족〉 속에 세 사람이 아니라 ‘다섯 명’이 있으며, 〈딸〉을 그린 박경란의 아버지가 독립운동가 박창빈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빈칸이 많은 ‘경계의 화가’의 행적은 성실한 저자 덕분에 또 한 칸 채워”지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개인의 기록이자 역사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