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든 질병이든 그로 인한 장애와 고통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들은 적지 않다. 저마다의 절실한 사연을 지녔음에도 그러한 서사들의 공통점은 고통을 겪는 이가 시련을 거쳐 절망을 극복하고 교훈을 얻는 긍정적인 결말로 나아간다는 데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들은 오래전부터 우리 안에 내면화되어 있고 기대하는 삶의 공통된 서사 구조와 진행 방식을 아주 닮아 있으며,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 그러한 이야기들을 들으려 하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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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개하는 크리스티나 크로스비의 『와해된, 몸: 크나큰 고통 이후를 살아가다』는,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통념과 예상을 벗어나 버린다. 이 책이 여느 장애/서사들과 구별되는 특징은 무엇보다 우선 그간 우리가 접해온 서사들이 전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와 방식으로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며 경험해 보지 못한 몸-마음의 생생한 모험으로 우리를 이끈다는 데서 온다. 모든 불운한 개인들처럼, 퀴어 페미니스트 학자이자 왕성한 활동가였던 저자 크로스비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얼굴이 부서지고 부러진 경추에 척수가 손상되어 거의 전신이 마비되고 몸의 순환계도 망가져 버렸다. “강인하고 유능하며 매력적인 여성”은 과거에만 존재하고, 죽음보다 삶이 두려운 자리에서 그는 고통스런 현실에 순응하거나 초월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언어의 범주를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와해된 몸’을 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고집스럽게 실현하려 한다. 척수 손상으로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신경학적 폭풍이 휘몰아치는 황무지를 밤낮으로 횡단하는 이 무모한 여행은 이를테면 “잃고 나서야 상실한 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식의 이성적 조언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정동이 이끄는 대로 고통의 지형도를 그려나간다. “얼어붙은 사람이, 눈雪을 생각해 내듯” 몸속의 고통과 두려움을 낱낱이 헤집고 셈하는 그녀의 글은 주디스 버틀러의 표현처럼 “번뜩이는 정밀함으로 타오르고”,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자신의 욕망 어느 것 하나 비루한 것으로 포기하지 않으면서 끈질기게 이어진 그녀의 글쓰기는 “우아하면서도 무시무시”한 회고록을 남긴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크나큰 고통 이후를 살아내야 했던 그녀의 삶도, 그녀의 글쓰기도 자신을 둘러싼 존재들의 지탱 없이는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이다.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상 우리의 몸에는 늘 구체적인 타인이 깃든다.” 『와해된, 몸: 크나큰 고통 이후를 살아가다』는 손쉬운 자기 연민과 고난 극복의 서사에 저항하면서 스스로를 재정의하려는 안간힘인 동시에 파괴된 몸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너절하고, 취약하며, 퀴어할 수 있는지”를 우리가 알아주기를 요청하는 책이다. 그럼으로써 우연과 운명의 간섭에 취약한 우리의 몸과 상호의존성과 서로의 존재를 지탱하는 능력에 대해 숙고하도록 이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취약한 몸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위태로운 존재들이지만, 삶을 살아갈 만한 것으로 만드는 용기도 이 존재들의 얽힘에서 나올 것이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자기 보존의 기술과 상품이 더욱 넘쳐나는 오늘도 여전히. 언제까지나.